제5장 추적

 

1.사인(死因)

 

“이름이 민영주가 틀림없나요“ 내가 홍반장에게 물었다.

“네, 주민등록증상으로는 민영주가 틀림없습니다.”

“혹시 이전에 개명을 했거나 달리 부르는 이름이 있다고 하던가요.”

“개명한 것은 모르겠고, 아가씨들이 주란 언니라고 하는 것은 들었습니다. 유흥주점에서 쓰는 가명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아닌 그런 건 아니고.....”

민주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원래 호적상 이름은 민영주이고, 민주란은 아버지가 나중에 별명처럼 지어준 이름이었던가? 공식적인 경우 외에는 본명을 밝히지 않고, 민주란이라는 이름으로만 살아왔던 것일까?

 

“민주란 아니 민영주의 과거 행적에 대해 조사된 게 있습니까”

“6개월 전에 광고를 보고 ‘여왕벌’에 흘러들어왔다는 것 외에 그 전 행적에 대해서는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아가씨들도 전여 모르던걸요 ”

“유족들은요?”

“그게... 유족이 없습니다. 수소문해보았지만 연락닿는 유족이나 친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주말이라 관공서가 쉬어서 호적등본은 아직 뗄 수 없었구요”

“휴대폰 통화내역도 조사해보시지요. 유품중에 전화번호가 기재된 수첩 같은 게 있는지도 확인해보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홍반장이 건네준 비닐장갑을 끼고 민주란의 사체를 찬찬히 만져보았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딱딱하고 차디찬 기운이 다시 한 번 민주란의 죽음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사체의 변화중 초기현상인 체온하강과 사체경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나무토막이나 마네킹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민주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거친 숨결이 아직도 제 귓볼을 간질이고 있습니다. 그 숨결에선 황홀한 단내가 묻어났습니다. 당신과 나, 두 심장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서로 합쳐졌을 때 우리는 얼마나 놀랐었던지요. 들짐승이라도 들이닥친줄 알고 말입니다. 그게 당신과 나의 심장소리라는 걸 알고 또 얼마나 웃었던가요. 당신은 깊은 산중의 적요를 깨고 노래했습니다. 당신의 어여쁜 입술을 타고 힘찬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노래는 사랑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아니 완벽한 덫이었습니다. 저는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체념했습니다. 저는 사방에서 놓은 불이 온산을 벌겋게 태우는 환영에 빠집니다. 불길이 어두음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너울너울 춤추는 불꽃 한가운데에서 당신과 저만 알몸뚱이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산등성이엔 불을 끄러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이 한가득 물을 담은 두레박을 하나씩 들고 서 있습니다. '와와' 함성소리가 들립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던 저 태초의 남녀들처럼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부둥켜 안은 부드러운 가슴과 가슴은 용광로 속의 불길보다 더 뜨겁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흔적이 한줌 재로만 남는다 해도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이제 불꽃이 사위어가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산새의 지저귐과 풀벌레의 울음만이 우리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모두를 해체하고 새롭게 빚어주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그 무엇과도 당당히 맞설 수 있었습니다. 용맹스러운 전사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핏빛 제의를 치루면서 저는 당신을 제 주인으로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다짐했습니다. 당신은 내 눈빛에서 그 결심과 다짐을 본 듯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요? 저는 당신 덕분에 아직도 이렇게 힘차게 숨쉬고 있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 않고 나란히 설산을 오르는 꿈을 얼마나 많이 꾸었는데요. 그 꿈속에서 당신과 나는 늘 두손을 끝까지 놓치 않고 정상에 올라 그 너머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해를 함께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지시다니요. 한번쯤 찾아주지 않고서요? 저에겐 귀띰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나요. 무심한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이제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나는 한참 동안 눈을 감은채 그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하고 있었다.

“검사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 네 아닙니다. 변사자를 위해 잠시 명복을 빌었습니다”

홍반장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시 민주란의 사체를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손이 떨렸지만 직업적 본능은 머리끝부더 발끝까지 민주란의 사체를 조심스럽게 탐색하게 하였다. 사진상으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거나 놓쳤던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다른 부분 보다 왼쪽 어깨 부분에 울혈이 심하군요.”

전체적으로 사체는 사진에서 본 것과 같이 청자색을 띄고 있었지만 특이 왼쪽 어깨 부분이 더욱 심했던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사체가 떠내려온 자세 때문에 왼쪽 어깨 부분에 울혈이 많이 생겼을 수도 있구요. 그리고 가정입니다만 살아 있을 때 왼쪽 팔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물속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왼팔로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는 뜻인가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꼭 그런 것은 아니구요”

“만약 산책을 나갔다면 어느 정도 밝은 상태일 텐데.... 그 시간이면 술도 상당히 깨었을테고....단순히 바위같은데서 미끄러졌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키 높이 이상에서 실족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까”

“주변에 높은 곳에서 실족할만한 장소는 여러 군데 있습니다. 변사자가 무언가를 잡았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지만요. 그리고 꼭 어느 정도 날이 밝아서야 산책나갔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속이 좋지 않아 바람을 쐬려고 깜깜한 밤중에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구요. 그럴 경우 달도 뜨지 않은 날이어서 실족할 가능성은 더 많습니다.”

“네, 그렇군요” 나는 홍반장의 논리정연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이는 것으로 동조의 뜻을 전했다.

“오른쪽 손은 무언가 움켜쥐고 있다가 그대로 경직된 듯 한데... 손바닥에 약간 베인 흔적도 있고요. 어떻습니까?” 오른쪽 손은 거의 주먹을 쥔 상태로 굳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익사의 위험에 처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물위에 떠있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물론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물에 빠질 경우에는 그럴 경황도 없이 많은 물을 마셔 정신을 잃게 되지만요. 대부분의 경우는 물에 빠지지 않으려는 처절한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허우적거림도 그 하나이구요. 그런 행동의 하나로 주위에 있는 물체를 잡게 되는데 수초, 나무의 가지나 뿌리, 잡초, 지푸라기, 모래 등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절박한 상항을 말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때로는 물바닥에 있는 물체를 잡을 때도 있고, 발로 무언가를 잡으려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지요. 아마도 평상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폭발적인 힘이 생겨날 겁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잡아 강한 힘을 준 상태에서 익사하게 되면 그 상태 그대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시련(屍攣)이라고 하는데 사후에도 물체가 손에 쥐어진 채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홍반장이 베테랑답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그런 현상도 익사로 추정할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이 되겠군요. 혹시 움켜쥔 손에서 무언가 발견된 것이 있었습니까.”

“네, 저희가 현장에 갔을 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오른쪽 손에만 시련이 남아 있었을까요. 오른손잡이 일까요” 민주란은 왼손잡이였던 것이다.

“오른손잡이라 그러 수도 있고, 어떤 이유로 오른쪽 손에 더 강한 힘을 주었을 수도 있고요....아까 왼쪽 어깨의 울혈이 물에 빠지기전 무언가를 잡고 있었던 흔적이라고 한다면 왼쪽 손으로 무언가를 잡고 있다가 힘이 빠져 강으로 떨어졌고, 물에 빠져서는 왼쪽 팔은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물에 빠져서도 살아나려고 사용가능한 오른손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수초나 나뭇가지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 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왼쪽 팔뚝을 보니 옅은 자색의 멍자국이 있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늘자국이 하나 있었다.

내가 그 부분을 눈여겨 보고 있자 홍반장도 알고 있었다는 듯 “아시겠지만 이런 쪽 애들은 뽕을 많이 합니다. 제가 보기에 바늘로 투약한 자국 같습니다.”

“그런데 왜 바늘자국이 하나 뿐이 없지요, 상습적으로 투약했다면 상당히 많은 바늘 자국이 있어야 할텐데, 그리고 이렇게 멍이 들었다는 것은 초보자일 경우에나 그런 것 아닌가요?” 내가 아직은 마약에 대해 부족한 상식으로 물어보았다.

“술을 많이 마신 것으로 보아 취한 상태에서 제대로 혈관을 찾지 못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평상시에는 액체에 타서 투약하다가 그날만 주사기를 사용했을 수도 있구요”

“여러 사람이 자는 방에서 혼자 투약했을까요. 밤에 혼자 밖에 나와 투약했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차량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함께 투숙했던 아가씨들 모두 모발검사를 할 예정입니다. 물론 동의를 받아서요”

“숙소나 차량에서 마약이나 주사기가 발견되었나요”

“아니요, 변사자의 소지품을 조사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다른 아가씨들 소지품은 아무 근거 없이 저희가 뒤질 수 없었구요.”

“그래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미심쩍으니 일단 부검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주말이고 국과수까지 가려면 월요일이나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족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유족도 나타나지 않고 있고....그리고 무엇보다 타살 흔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비공이나 구강에 백색 거품이 있는 것으로 보면 익사한 것이 틀림없고요, 왼쪽 어깨 부위의 울혈이나 팔뚝의 멍도 타살로 보기는 어렵구요” 홍반장은 부검지시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부검은 일거리가 많고 민감한 업무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영장을 신청해야 하고, 사체를 싣고 서울의 국과수까지 가야 하고, 하루종일 순서를 기다리며 부검실에 있어야 하고, 나중에 유족들로부터 항의를 들을 수도 있고...

“그럼 급한대로 혈액 검사를 해보시고 부검여부는 나중에 결정합시다. 타살이 아니더라도 마약을 했다면 조사해야지요. 혈중알콜농도도 재보시고요.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나 유품이 더 있는지 조사해보고, 아 참 직장내 온도도 재보시지요. 정확한 사망시각도 알아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그리고 지문감식은 해보았나요”

“아직.... 아가씨들도 민영주가 틀림없다고 하고, 백안에 있던 지갑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도 민영주로 되어 있어서요...지문대조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으니 지문대조를 해보시지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민주란의 사체는 다시 하얀 모포로 덮힌채 시체보관소의 냉동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민해져서인지 민주란의 사인에는 여러 가지로 의문점이 많았다. 명확히 타살로 추정되는 부분은 없었지만 본명이 민영주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어떻게 유흥주점 마담이 되었고,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의 소도시까지는 왜 흘러들어와야 했었는지.... 사인도 밝혀야 겠지만 민주란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연일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월요일 오후 홍반장으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님, 아무래도 민영주의 사체에 대한 부검은 해야될 것 같습니다.”

“왜요? 무슨 특이사항이라도 발견되었나요.”

“혈액검사에서는 필로폰이나 대마 성분이 나오지 않았고, 혈중알콜농도도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망추정 시간은 대략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것은 부검을 통해 밝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빨리 부검영장을 올리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망 추정시간이 새벽 3시 내지 5시라면 물에 빠진 지점을 어느 정도 추정해볼 수 있을까요?”

“네, 다른 특이사항이 없다면 위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내지 2킬로미터 전방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지요. 추락할만한 장소가 있나요”

“공사현장이 있고,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마약을 한 것도 아니라면 그 시간에 그 먼거리까지 걸어서 올라갔다는 것도 이상하군요”

“네, 그렇습니다. 검사님”

“제가 공사현장 쪽으로 갈테니 그쪽으로 나오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만사 제쳐놓고 참여계장인 양구홍과 함께 홍반장이 말한 공사현장으로 달려갔다.

양구홍 계장이 “오늘 조사하려고 불러놓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하죠”

“일단 양해를 구하고 다른 날로 소환일을 다시 잡아 통보해주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공사현장에선 새로운 도로를 내고 있었고, 그 옆에 강을 가로지르는 오래된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공사현장에 갔을리는 없고, 다리에서 추락하였다면 일부러 자살을 하기 위해 그곳까지 갔을까요” 내가 홍반장에게 물었다.

“자살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충동에 이끌려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걷다보니 이곳까지 왔을 수도 있겠지요”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혈중알콜농도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군요,”

“네, 그렇습니다. 2시까지 많은 술을 마시고 늦어도 서너시간 후에 사망했다면 아무리 알콜분해 능력이 뛰어나도 분명히 혈중알콜농도가 나와야 하는데 말이죠”

나는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녀의 흔적을 찾으려고 해보았다. 다리 중간쯤 왔을 때 내가 소리쳤다.

“어, 난간에 어떤 자국이 있군요. 손자국 같지 않은가요.”

오래된 다리는 위아래로 하얀색 페인트칠이 된 철제 난간이 두 줄로 이어져 있었고, 먼지가 쌓인 아래쪽 난간에 손자국 비슷한 것이 보였던 것이다.

“글쎄요, 먼지 묻은 난간을 누군가 잡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모양으로 보아서는 위쪽에서 다리난간을 잡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구요” 홍반장이 말했다.

“이 다리 위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나요” 내가 물었다.

“현재 인가도 없어서 거의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난간의 높이가 허리 정도 되는 것으로 보아서 여기서는 실족하기 어려운 장소인 것 같은데요” 양구홍 계장이 말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떨어졌거나 누군가 밀었다는 것인가요. 자살을 하려고 스스로 떨어졌다면 굳이 난간을 잡았을까요, 그럼 타살쪽에 가까운 것인가...” 내가 혼자말 비슷하게 했다.

“글쎄요, 아직 뭐라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난간의 흔적이 민영주의 손자국이라는 것도 확실치 않구요 이곳이 추락지점으로 가장 유력하게 추정된다는 것일 뿐 다른 인근의 장소에서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홍반장이 신중하게 말했다.

“난간의 자국도 면밀하게 감식해 보시지요” 내가 홍반장에게 지시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 참! 검사님, 지문대조를 해보니 사체는 민영주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민주란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네?” 나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럼 민주란이 민영주라는 가명을 사용한 것일까요, 주민등록증을 위조해서?”

“그럴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민영주를 추적해 보시지요, 혹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지, 민주란을 알고 있는지 조사해 보아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주민등록증이 위조되었는지도 확인해 보아야 하구요”

“네, 검사님”

 

지문대조까지 해서 확인되었다면 죽은 사람은 민주란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남겨둔 백안에는 민영주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이 발견되었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인가. 주민등록증상의 민영주라는 인물도 실재 존재한다면 민주란이 민영주의 주민등록증을 훔쳤거나 주워 사진만 바꿔치기 해서 가지고 다녔다는 것이 된다. 난간의 흔적, 마약을 투약하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진 팔뚝의 주사바늘 자국, 왼쪽 어깨의 울혈, 오른쪽 손의 시련 등등. 계속해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것은 민주란의 사인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것이기도 했다. 꼭 알아내야 한다. 내가 민주란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마지막 남은 기회라는 예감이 들었다. 민주란과 나 사이는 삶과 죽음에 가로놓인 벽도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모든 벽을 허물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였던 것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Posted by law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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