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다음날 일요일에도 출근했다. 그동안의 상황을 정리하고 향후 수사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수사도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지략과 집중과 열정이 필요하다. 과거에 이미 있었던 일들을 추리하고 재구성하는 것이기에 창의적인 일은 될 수 없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기획이 필요하고, 적절한 수사기법을 활용하여야 하며, 때로는 상상력과 영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드러나지 않은 범행동기나 원인, 나아가 어떤 결과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 모순까지도 분석하고 개선책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검사는 수사기술자, 법기술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역사와 사회의 변혁을 갈망해야 하고(정의감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일 게다), 반듯한 철학(평범한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과 모순덩어리일 수 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수사는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생물이다. 비뚤어진 신념을 가진 자에게 수사를 맡기는 것은 살인마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다. 진실은 물론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의 속살까지 다가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외로운 나와의 싸움을 해야한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6월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메타세콰이아가 양옆으로 끝없이 늘어선 청사앞 울창한 가로수 길을 걸으며 심호흡을 해본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k8010314?Redirect=Log&logNo=70125134548

                                                      (사진은 본문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홍반장에게 연락해 보니 마침 출근했다고 하여 시간이 되면 잠시 검사실로 들러보라고 하였다. 오후에 스포츠 머리에 나이가 들어서도 다부진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홍반장이 특유의 굳게 다문 입술을 내밀며 검사실로 찾아왔다.

 

“검사님, 안그래도 월요일쯤 보고드릴 거였는데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반장이 말했다.

“새롭게 수사한 내용들이 많은가 보군요” 내가 물었다.

“네, 민주란의 출입국 기록을 보니 1986년 칠레로 출국했다가 정확히 10년 후 다시 입국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줄곧 목포에서 살다가 서울로 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 살던 곳에 수사협조 요청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현지 경찰관이 탐문수사한 바에 의하면 민주란은 1년 전쯤 서울에 온 것 같습니다. 목포에 있는 집은 민주란 명의로 되어 있는데 처분하거나 세를 주지는 않았고, 서울로 주소지를 옮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아직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1년 전쯤 서울에 왔고, 6개월간 여왕벌의 마담으로 일했다는 것인데..... 서울로 왔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요?”

“민주란은 목포에서 조기배에 투자하여 상당한 돈을 벌었고, 굴비공장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일은 공장장한테 맡기고 서울에 다녀오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서울에 일이 있어서 당분간 목포엔 내려가지 못할 거라고 했다는군요. 간간히 전화연락이 오고는 했는데 최근 연락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들 합니다. 사망 소식에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목포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 외진 곳에 들어와 마담으로 일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홍반장의 설명에 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겉으로 보기엔 그렇습니다. 저도 그 점이 석연치 않았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민주란이 사내 아이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민주란의 호적이나 주민등록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민주란의 아이이거나 입양한 것 같지는 않고, 어디서 데려다 키우고 있던 아이 같습니다. 그 아이가 1년 전쯤 사라졌고, 민주란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아이의 실종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민주란이 키우던 아이를 찾기 위해 서울로 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왕벌의 마담으로 변신한 것과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군요.”

“네, 하지만 아직 저희가 밝히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그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많을 것 같습니다”

“민주란의 통화내역은 조회해 보셨나요?”

“통화내역을 조회해 보려고 민주란 명의로 가입한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6개월 전쯤 명의가 변경되었고, 그 이후로는 다시 휴대폰을 개설하지 않았습니다.”

“여왕벌에 들어올 즈음엔 자신의 휴대폰을 버리고 민영주의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것이군요? 그럼 민영주 명의의 휴대폰 통화내역도 조회해보셨나요””

“네, 6개월간은 H읍내를 벗어나지 않았고, 그 전에도 인근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가끔 착발신지가 서울이나 다른 도시이기는 해도 큰 의미를 둘 정도는 아니고요.”

“통화내역 상대방들은 어떤가요”

“주로 직원들이나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연락을 주고 받은 사람들중 특이 사항은 없었습니다.”

 

“사망할 무렵 통화한 사람은 있던가요”

“네, 민박집과 같은 기지국 내에서 사망 당일 새벽에 통화한 내역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통화한 사람이 누군가요?” 나는 비로소 단서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치켜뜨고 물었다.

“휴대폰 명의자는 경상도 사는 사람인데 자신은 그런 번호의 휴대폰을 사용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군요. 사건 당일 알리바이도 확실하구요. 대포폰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포폰을 사용해서 전화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민박집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뭐 그런 뜻인가요”

“그렇게 추정됩니다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대포폰에 대한 사용내역도 조사해 보았는데 거의 수신용으로만 사용했고, 마찬가지로 주활동지는 H읍내 부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민주란과 알고 지내던 손님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만 그 대포폰은 새벽에 민주란과 통화한 내역 이후로 통화한 내역은 없습니다. 휴대폰이 꺼져있는지 발신지도 추적되지 않습니다.”

 

“민주란이 여왕벌에서는 어떻게 지냈다고 하던가요”

“여왕벌에 근무하면서는 인근 빌라에서 살았습니다. 결근이나 지각한 적도 없이 성실했다고 합니다. 손님들중에 민주란에게 목메단 놈들이 여럿 있었지만 감히 어떻게 해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직원들 말에 의하면 거만하지도 않았고, 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구석엔가 범접할 수 없는 마력같은 것이 흘렀다고 하구요. 그게 어떤 건지는 저도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한번 찾아온 놈들은 열렬한 단골손임이 되었다고들 하고, 그 때문에 여왕벌은 H 읍내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도 알려져 굉장이 번성했구요. 사장은 진짜 여왕을 얻었다고 굉징히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민주란을 흠모하던 사람들이나 또는 그녀를 시기하던 직원이나 인근 업소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요?”

“네, 그런 쪽으로도 심층적으로 조사해보겠습니다.”

 

“숙소나 업소에서 민주란의 물건중 특별한 게 있었습니까?”

“짐도 별로 없었고, 돈이나 통장, 귀중품도 별로 없었습니다. 악착같이 돈을 모은 것 같지도 않구요. 다만 일기장으로 보이는 대학노트가 10여권 정도 있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제가 가져왔습니다.” 홍반장은 보자기에 싸온 빛바랜 노트 10여권을 내밀었다.

“내용은 보셨나요?”

“대충 훓어 보았습니다만 신변잡기나 일상을 적어놓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사망한 날로부터 1주일 전까지 기록해 놓은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민영주는 민주란과 어떤 관련이 있던가요?”

“민영주는 추적해보니 부산의 샛별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돌이 지날 무렵 어머니에 의해 맡겨졌던 것 같습니다. 보육원은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어느 수녀님 밑으로 입적되어 있었구요. 민영주의 어머니가 아이를 맡길 때 작성한 서류가 남아 있었는데 어머니 이름은 양신화라고 하고 아버지란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타지에 나가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민주란의 일기장에는 샛별 보육원 이야기도 나오고 야간 전수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민주란은 서울에서 자랐고, D대학을 나온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일기장 내용은 민영주의 삶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 민주란이 민영주의 일기장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인가요. 죽기 1주일전까지 작성했다면 그 1주일 사이에 민영주의 일기장을 확보했다는 뜻인데....그것이 가능할까요? 민영주의 휴대폰은 6개월 전부터 사용했고....두 사람이 함께 살았거나 만났던 흔적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말입니다”

“네, 저도 그 부분이 애매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았거나 만났다면 그 좁은 바닥에서 모를리 없을텐데 말이죠”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을까요?”

“그럴 가능성도 영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마지막으로 통화했다는 대포폰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보시고, 민주란이 사망한 지점으로 추정되는 부근의 도로에 설치된 CCTV를 모두 분석해 보시지요. 민영주에 대해서도 계속 추적해 보십시요. 그리고 인근 농약 판매점에서 사이안산 성분이 들어간 농약을 판매한 기록이 있는지도 점검해보시구요. 일기장은 제가 한번 검토해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검사님”

 

'민주란은 어떻게 목포에서 정착하게 되었을까?, 민주란이 키우던 아이는 누구인가?, 아이가 사라진 이유는?, 민주란은 왜 서울에 올라와 다시 H읍으로 오게되었을까?, 술집 경험도 없는 민주란이 여왕벌의 마담이 된 이유는? 민영주는 또 어떻게 만났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고, 멍하니 있다보니 벌써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그 때 홍반장이 놓고 간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수수께끼를 푸는데 열중해 있느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불현듯 비밀은 저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을 여기 저기 들춰보았다. 중간중간에 소녀 취향의 낙옆이나 편지도 끼여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기록이 빽빽히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 밤부터 일주일 간 꼬박 10권의 일기장에 매달려야 했다. 엄청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비밀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듯 했다. 

Posted by law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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