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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디서 왔어요. 진짜 아빠, 엄마는 왜 없는 거죠?” 어릴 적 영주는 안젤라 수녀 엄마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을 때 물어보았더랬다.

“영주는 별나라에서 내가 데려왔지”

“그 별나라가 어디에요?”

“어디긴, 저기 별 두개가 나란히 보이지 않니” 안젤라 수녀는 밤하늘의 쌍둥이 별자리를 가리켰다.

“거기에 제 엄마, 아빠가 살아계신가요”

“그럼, 엄마, 아빠는 양쪽 별에 한분씩 살고 계시지, 밤에는 지구별을 비추기 위해 떨어져 계시지만 낮에는 함께 계신단다, 영주에게는 쌍둥이 언니가 한명 있었지, 부모님은 영주와 영주 언니를 지구별로 보내신 거야, 두사람에겐 특별한 임무를 주셨어, 그 임무는 너희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꽃씨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싹을 틔우게 하는 거야, 나중에 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별 하나씩을 주실거란다”

“아니에요, 저는 나쁜 아이였을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저를 이 먼 지구별로 쫒아보내신 거구요”

“쫒아낸 게 아니란다, 너희들이 너무나 착해서 특별히 이곳으로 보내신 거야, 여기에는 아직 구원받을 사람들이 너무나 많거든, 너희는 하느님의 축복받은 자녀들이란다”

“그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 아빠와 재미있게 놀아봤으면 좋겠어요”

“꼭 보이고 만져져야만 있는 건 아니란다, 하느님은 우리가 볼 수 없지만 늘 우리 곁에 계신 것처럼 말이야,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영주를 지켜보고 계실거야, 영주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시고, 영주가 아프면 함께 아퍼하시고"

안젤라 수녀 엄마의 말은 가슴속에 깊게 각인되었고, 영주는 잠을 잘 때도 길을 걸을 때에도 엄마, 아빠가 양쪽 옆에 함께 있다는 믿음은 그 후로도 한참동안 계속되었었다. 밤이면 쌍둥이 자리를 바라보며 자신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빠, 엄마와 쌍둥이 언니를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겨울밤 제일 잘 보이는 별자리 중 하나가 쌍둥이자리였다. 나중에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쌍둥이 자리는 스파르타 왕비 레나와 제우스신 사이에 태어났던 카스토르와 폴룩스 쌍둥이 형제를 기리기 위해 만든 별자리라고 하였다. 불사신의 몸을 가지고 있던 폴룩스는 카스토르가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려 하나 불사의 몸이어서 죽을 수도 없어 제우스에게 자신의 죽음을 부탁했고, 제우스는 이들 형제의 우애에 감동해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사람 형상의 나란한 밝은 별 두 개로 만들어 형제의 우애를 영원히 기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영주는 철부지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쌍둥이 별에 산다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도, 착한 마음의 꽃씨로 온세상을 덮게 할 거라는 상상도 모두 진실로 받아들였던 그때로. 그래서 하나도 슬프지 않았던 그때로.

이제 쌍둥이 별자리도 엄마, 아빠도 안젤라 수녀 엄마가 지어낸 전설이란 걸 알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억눌린 슬픔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영주는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영주가 원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줄 것이다. 영주는 수녀가 되려고 했었다. 평생을 기도하며 그늘진 곳에서 봉사하는 삶,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의 종으로 사는 삶,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늘 곁에서 보아왔던 수녀 엄마처럼 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였고,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영주는 벌서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수녀 엄마를 대신해 어린 아이들을 돌보거나 학습을 지도하였고, 엄한 사감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난 여름 그 일만 없었더라면 영주의 한평생은 길잃은 어린 양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등불이었노라고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보육원생 중에 마동수라는 아이가 있었다. 영주보다는 두세살 위였고, 보육원에서는 제일 나이가 많았다. 간질병 증세가 있어 가끔씩 거품을 물고 쓰러져 눈동자가 한쪽으로 돌아가면서 경련을 일으키고는 했다. 그 땐 응급조치도 소용없었고, 스스로 가라앉을 때까지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에게 나쁜 귀신이 씌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마동수는 발작후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마다 자신을 애워싸고 있는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동수는 그런 병적 증상과 그로 인한 열등감 때문에 항상 침울한 모습에 눈가엔 독기를 품고 다녔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주는 몇푼 안되는 용돈을 빼앗거나 약한 아이들을 이유 없이 때리고 남의 물건을 훔쳐오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마동수는 그런 악행으로써만 세상의 비웃음에 보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당한 아이들은 마동수의 몸속에 들어 있는 나쁜 귀신이 자신에게 들러붙을까봐 무서워 마동수의 비행을 함부로 발설하지도 못했다.

영주는 아이들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적개심과 두려움을 눈치챘고, 몇몇 아이들을 통해 마동수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수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영주로서는 마냥 모른채 할 수 없었다. 건물 뒤편에서 마동수가 한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 때다 싶어 한번만 더 그러면 신부님과 수녀엄마에게 말하겠다고 경고했다. 마동수는 분노로 가득찬 눈빛으로 영주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마동수는 아이들이 영주를 많이 따랐고, 영주를 잘못 건드리면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병적으로 심사가 뒤틀린 사람들은 오히려 겁이 많아서 상대방이 강하게 저항하면 금방 뒤로 숨기 마련이다. 마동수도 영주로부터 처음 경고를 받았을 땐 그랬다. 그러나 그 뒤로 마동수는 일거수일투족 영주를 지켜보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그 전부터도 영주의 존재는 늘 눈에 가시처럼 찜찜하던 터였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모두 보육원을 비운 사이에 일은 벌어졌다. 마동수는 보육원 뒷마당에서 혼자 빨래를 널고 있던 영주의 뒤로 다가가 입을 틀어막고, 농기구를 넣어두는 창고로 영주를 끌고 갔다.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건 건 파도소리뿐이었다. 마동수는 영주의 온몸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고, 영주가 실신한 사이 옷을 갈갈이 찢은 다음 강간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벌거벗긴 영주의 몸뚱아리를 바라보며 사악한 눈빛으로 번득이던 눈동자가 풀리면서 벌겋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어 일그러졌고, 옆으로 쓰러져 격결하게 몸을 뒤틀었다. 영주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마동수는 바닥에 널부러져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고, 영주는 가까스로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어디에서도 마동수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 때부터 영주는 부끄러움으로 몸서리쳤고, 한번도 본적 없는 부모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건 모두 부모 탓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느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려는 좋은 세상도, 평생에 걸쳐 할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말씀의 사역도 오해였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애초부터 자신은 하느님의 어여쁜 자식이 아니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거라는 의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예배당 마루에 앉아 밤을 새워 기도했지만 차오르는 격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깜박잠에 바다에 휩쓸려 심연으로 가라앉는 무서운 꿈을 꾸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고는 했다. 영주의 마음속에서는 서서시 악마가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영주는 그 무렵 우연히 자신에 대한 기록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고, 어머니가 혼자 영주를 낳아 샛별 보육원에 버렸으며, 쌍둥이 언니가 있었으나 그 언니도 어딘가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다시는 아이에 대한 친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까지 하였다. 철들 무렵부터 영주는 아빠, 엄마는 죽은 줄로만 알았고,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게 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엄마는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니.... 소설이나 영화속 엄마들은 오매불망 헤어진 자식을 그리워하지 않던가. 운명이 그들을 갈라놓아도 평생을 자식을 찾아 헤메이지 않던가. 자신을 버린 엄마는 얼마나 독한 마음을 품고 있었단 말인가. 어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더라도 그 나이의 영주로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의 육체에도 엄마의 검은 피가 그대로 흐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탄은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점점 영주의 영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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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w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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