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춘의 엘레지1

 

중학교 졸업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날 영주는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성긴 빗줄기가 텅빈 들판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아 얼어붙은 땅의 살갗을 부드럽게 적시고 있었다. 버스는 겨울비 내리는 포도 위를 뚫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봄이 오고, 겨울은 숨을 곳을 찾을 것이다. 아이들은 훌쩍 커가고, 어른들은 자리를 내줄 것이다. 저 멀리서 보육원 건물이 언덕위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버스가 산모롱이를 돌자 첨탑 위의 십자가마저 시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제야 알을 깨고나와 보금자리를 처음 떠나는 갈매기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댈 것은 오직 광대한 하늘과 바다 뿐. 갈매기의 날개 짓은 죽음의 덫이 우글거리는 지상에서 살아남으려는 비장한 발버둥이었던 것이다.

‘안녕, 바다와 별과 고독이여!’ 16살 영주는 뻥뚫린 가슴에 흩어진 기억들을 쓸어넣고 망각의 뚜껑으로 굳게 덮었다. 다시는 꺼내보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서울에 내렸을 땐 휘황한 빌딩 숲들 틈으로 한뼘 남짓 남아 있는 하늘에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기나긴 성장의 터널을 한달음에 지나버리고, 서울 땅을 밟았을 땐 곧장 어른의 세계로 들어선 것만 같았다. 터미널 안 벤치에서 웅크린채 밤을 지새고,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 왔다. 바다 위 시뻘건 해의 그림자는 온데간데 없고, 김빠진 태양이 희미하게 도시의 거리를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거리로 나서자 소란스런 차량들의 물결이 넘쳐나고, 성난 표정의 사람들이 앞만 보며 바삐 오가고 있었다. 영주는 왈칵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영주는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보육원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중 박칠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박칠성은 전쟁 고아로 보육원에 들어왔고, 나이가 들어 보육원을 나가서는 소년 노동자로 시작하여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현재는 직원 100여명 규모의 가전제품 하청 공장을 일구어냈다. 영주는 박칠성을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때마다 보육원에 작은 선물을 한아름씩 보내주던 고마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 안젤라 수녀 엄마는 영주의 갑작스러운 선택을 극구 만류하다가 영주의 결연한 태도에 결국 포기하였고, 떠나는 영주에게 박칠성에게 미리 연락해두었다며 꼭 전화하라고 일러두었었다. 전화 속 박칠성은 밝은 목소리로 영주를 맞아주었고, 영주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가 일러준 공장을 찾아갔다. 변두리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리자 낮은 구릉들 사이사이로 개활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구릉지 위로는 배나무 과수원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개활지엔 이랑 위로 이런저런 작물을 심었던 흔적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시멘트를 바르지 않아 벽돌의 거친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낮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배나무밭 여기저기에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 땅을 파고 채워넣은 인분이 얼었다가 녹으면서 나는 냄새와 연탄재와 공장 쓰레기 더미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더럽기 짝이 없는 골목마다에서 영세한 공장들이 뿜어내는 화공약품 냄새가 섞여 호흡을 할 때마다 정신이 아뜩해질 정도였다. 이곳이 서울인가 싶었다. ‘샛별산업’이라는 허름한 나무간판이 걸려있는 공장 사무실로 들어서자 난로가에 있던 남자 직원이 영주를 아래위로 흘겨보았다.

“우리 공장 아가씨는 아닌 것 같고, 어린 아가씨가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 남자 직원이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물어보았다.

“저, 민영주라고 하는데요, 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남자 직원은 영주를 사장실로 안내해주었고, 낡은 쇼파에서 탁자 위에 다리를 걸치고 졸고 있던 박칠성이 문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드렸던 민영주입니다”

“응, 네가 영주구나, 이리 와서 앉거라” 박칠성이 자세를 고쳐앉으며 앞자리를 내주었다.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다, 신부님하고 안젤라 수녀님도 잘 계시지?”

“네, 잘 계세요”

“안젤라 수녀님한테 이야긴 들었다만, 아직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그곳에서 상급학교도 진학하고 공부를 더 하지 그랬니, 안젤라 수녀님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을텐데...”

“법적으로도 보육원에 있을 나이도 아니고, 계속 있으면 여러모로 누가 될 것 같아서요, 이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제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공부를 하더라도 제가 돈을 벌어서 할거구요”

“그래, 생각이 참 기특하구나, 하지만 여기는 작업 환경이 열악하다, 만만치 않을텐데.... 네가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니에요, 전 이겨낼 수 있어요, 어떤 일이든 주시면 열심히 할께요” 영주는 박칠성이 자신을 돌려보내면 어쩌나 걱정하며 힘주어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일을 시작해보도록 하고, 나한테는 오빠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힘들면 언제든 얘기해라, 내가 힘닿는대로 도와주마” 박칠성은 처음의 미적지근한 태도와는 달리 흔쾌이 영주를 받아주었다.

박칠성은 영주를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하지만 야무진 영주의 모습에서 희망의 불씨도 함께 보았다. 


그리하여 영주는 그 때부터 공장 노동자로서 살기 시작했다. 특근에, 야근까지 꼬박 12시간 이상을 앉아 트랜지스터 라디오 부품에 회로를 꼽고 납땜 용접을 하였다. 밤에는 10여명이 함께 칼잠을 자야하는 공장 숙소에서 지냈다. 일을 마치면 침침해진 눈과 뻐근한 몸뚱아리가 물젖은 소금가마처럼 천근만근이었다. 자리에 누우면 금방 잠의 심연 속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가 아침이면 겨우 일어나 일터로 달려가야 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여공들은 영주의 또래부터 20대 후반까지의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입이라도 하나 덜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무작정 상경한 여자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장 일뿐만 아니라 숙소에서는 막내로서 언니들이 시키는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였지만 영주는 묵묵히 버티어 나갔다. 어느 사회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연대와 우정의 끈으로 묶이다가도 어느 순간 위계가 생기고, 편이 갈리고, 그 속에서 시기와 음모와 배신 따위가 난무하곤 한다. 영주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면서도 동료 여공이 산재로 사망하였을 땐 유족들에게 합당한 보상금을 지급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라며 결연히 일어나 위원회 대표로서 박칠성과 싸우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영주는 여공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갔고, 모두들 그녀의 그늘 아래서 안식을 구하였다. 그렇게 금방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공장은 점점 번성하였고, 시대의 흐름과 각성한 근로자들의 노동운동의 결과로 작업환경이나 근무조건도 많이 개선되었다. 박성칠의 발빠른 수완과 경영능력에 힘입어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청공장에서 시작한 회사는 자신의 상표를 걸고 컴퓨터를 직접 생산하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였다. 영주는 최소한으로 먹고, 누추하지 않을 정도로 입으면서 한푼 두푼 돈을 모아 5년전부터는 전세방을 구해 자취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지방 각지에서 올라온 여공들은 박봉을 쪼개 부모에게 보내고 동생들 학비에 보태고 나면 간신히 한달을 버틸 수 있는 여력조차도 힘들었지만 영주는 보육원에 달달이 보내는 약간의 후원금 외에는 모두 저축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돌볼 살붙이가 없다는 것은 외롭고 허전하다는 불편이 따랐지만 짊어진 짐이 없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살아남는데 유리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10년의 세월동안 영주는 스무살이 넘은 나이에 야간 전수학교도 수료했고,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틈틈히 헌책방에서 구한 문고판 문학전집도 섭렵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자아를 찾기 위해 홀로 글쓰기도 익혀갔다. 때가 되면 방송통신대학에라도 들어가 더 높은 수준의 학문도 배워보리라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일요일이면 성당에 나가 ‘하느님의 영광된 도구로 쓰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몸도 정신도 강철처럼 단련되어 갔고, 두꺼운 껍질 안에 누에고치처럼 숨어 하늘로 날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주는 언젠가 큰 세상에서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영주는 친엄마로부터 대물림되었을 것만 같은 마귀의 기운이 몸안에서 기어나오려고 꿈틀대는 악몽에 시달릴수록 그것을 정화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영주에게 앞으로 닥칠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노라면 '운명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로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게 된다.

 

여공들중엔 인근 공장의 남자 아이들이나 작업반장과 연애질을 하거나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놈팽이들과 동거생활을 하는 이도 있었고, 뜻하지 않게 아이를 낳아 일찌감치 결혼하는 이도 있었다. 생활고에 지친 나머지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져 매춘굴로 흘러들어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영주는 사춘기를 지나고, 이성에 열광하는 나이를 거치면서도 주변의 남자들이란 하찮기 그지 없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랑의 유희 따위는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백마탄 왕자를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단지 감정에 휩쓸려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볼품없게 될 남자로 인해 주저앉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영주로부터 다시 시작될 자손들까지 생각하면 사랑이나 결혼은 스스로가 올곧게 선 다음에나 들어가야할 고귀한 영역이었다. 생각해보면 값싼 허영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인지도 몰랐다. 흐르는 강물을 아무리 높은 둑으로 막아둔다고 한들 언젠가 그 둑은 터져서 재앙이 될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억눌린 감정은 그것이 쌓이고 쌓여 터젔을 땐 아무도 잡을 수 없는 광기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것 같지 않은 영주에게도 어느날 사랑이 찾아왔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 저녁, 후배 여공들의 성화에 못이겨 인근 대학교 축제에 가게 되었다. 최루탄 가루가 대기중에 남아 매캐한 속에서도 어디선가 떠들썩하게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젊은이들은 숲속에서, 잔디밭에서 삼삼오오 모여 열띤 논쟁을 하거나 남녀가 야릇한 자세로 비밀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들은 그 자체로 별천지였다. 낭만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속에서 정염의 불꽃이 튀었다. 

 


그곳에서 영우를 만났다. 영우는 뿔테안경을 끼고 있었고, 한쪽 팔에는 두꺼운 원서 몇권을 들고 있었다. 잘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깊은 눈속엔 모성애를 자극하는 처연한 빛이 감돌았고, 입가엔 꾸밈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적어도 그 땐 그렇게 보였다.

영우는 영주 일행에게 다가와 “괜찮다면 우리와 합석하시 않으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영주는 머뭇거리는 후배들을 대신해 “우리는 대학생이 아니에요, 인근 공장 여공들이에요, 그냥 대학교는 어떤 곳인가 구경이나 하러 왔어요”라고 당당히 대답하였다.

영주는 자신의 처지가 비루하다거나 하찮다고 생가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후배들은 영주의 대답에 영우가 그냥 가버릴 것으로 생각하였는지 실망한 눈치들이었다.

영우는 뜻밖에도 “아, 대학생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같은 젊은 사람들끼리 이 밤을 잠시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도 저희들로서는 영광입니다”라고 하였다.

영우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영주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영우는 그런 영주의 손을 덮석 잡고는 잡아끌었고, 영주의 후배들도 말없이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마지 못한척 영우를 따라가게 되었다.

예닐곱명의 남녀가 뒤섞여 막걸리잔을 돌렸다. 영우는 동료들의 이야기에는 끼어들지 않았고, 영주 일행에게만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영우의 동료들은 영주 일행을 무시하는 듯 좀체 말을 걸지 않았고, 영우는 그와 달리 자신들을 무척 배려하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어색하고 못마땅한 분위기 속에서 막걸리잔이 몇순배 돌아갔지만 영주는 이상하게도 그리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무언가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견고한 성이 일찌감치 무너진 것일까. 아니면 기다리던 고귀한 사랑이 찾아온 것일까. 아무튼 늦바람은 무서웠다. 그날 이후로 영우는 영주에게 수시로 연락하여 달콤한 말을 반복하면서 영주를 유혹했고, 주말이면 영주를 불러내 기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기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영주는 삶이 비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우를 만났을 땐 물론이거이와 헤어져 있을 때에도 흥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주변 아이들은 “학필이나 먹물들은 조심해야 되, 단물만 빨아먹고 도망가기 일쑤야, 이전에 희숙이도 자살하지 않았니”라고 하였지만 영주는 다들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고만 여겼다. 희숙이는 대학생과 사귀었는데 임신을 하자 대학생이 20만원을 집어주며 “내 인생 망치고 싶어, 그냥 아이는 떼어내, 그리고 다시는 연락하지마”라고 하였다고 하고, 희숙은 그날 밤 그 대학생의 집 현관문 문설주에 줄을 걸고 목을 맸다. 영주는 희숙이를 떠올리며 퍼뜩 정신이 들어 ‘이러면 안된다, 신중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자꾸만 영우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우는 화학과를 다니는 복학생이라고 했고, 강원도 깡촌에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한다고 했다. 영주는 그런 영우가 존경스럽기까지 하였고, 배움의 기회를 유예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꿈같은 연애를 이어가며 몇개월이 지났다. 영우는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어 새로운 방을 구할 때까지 잠시만 있겠다는 핑계로 영주의 자취방을 차지하였고, 며칠 후 영주는 영원히 너를 책임지겠노라는 영우의 말에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 후 영우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고 집에서는 빈둥대거나 아침녘에나 들어와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영우는 도서관에서 밤을 샜다거나 밤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였고, 영주는 그 때마다 정성스레 아침상을 차려놓고 출근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낯모를 젊은 여자가 경찰관과 함께 찾아왔고, 그 후로 영우는 보이지 않았다. 영우는 의대생, 법대생, 공대생 등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나름대로는 노력한답시고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유명한 강의들을 도강하면서 주워들은 몇가지 테마를 외어 능숙한 말쏨씨로 젊은 여자들을 농락하고 돈을 뜯어내는 파렴치한 놈이라고 했다. 피해자만 십수명에 이르고 심지어 도강할 때 옆자리에 있던 여학생에게도 같은 과 선배인 것으로 속였다고 했다. 영주는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고, 무언가 음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음모 때문에 영우는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영우는 나타나지 않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의심가는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을 때 다른 동료들이 영우나 영주 일행에게 대한 태도며, 집에서 영우는 책을 들춰본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며, 영우는 대학생활이나 자신의 전공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 등등. 결국 처음 만나던날 함께 있었던 영우의 친구를 통해 "영우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대학생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신이 더 나서서 대학생 행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친구들은 그를 못마땅해 했다, 친구들은 '얼마나 대학생이 되고 싶었으면 그러겠느냐, 그러다 말겠지'라고들 했다, 영우가 계획적으로 여자들을 농락하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 몰랐다"는 말을 듣고서야 경찰의 수사내용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러나 영우는 '공납금을 내야하는데', '책값이 필요한데' 라고 하면서 꼭 갚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미 영주가 모아놓은 돈중에서 상당 부분을 들고 잠적한 후였다. 물론 영주는 졸업해서 취직하면 결혼식을 올리자는 영우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그 돈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영우가 경찰에 잡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보지 않았고, 경찰의 권유에도 고소하지 않았다. 영주는 영우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수치와 분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그제야 희숙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죽고 싶은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소문은 공장 노동자를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고, 더이상 회사에 출근할 수도 없게 되었다. 박칠성과 많은 여공들이 영주를 위로하면서 “미친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라,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네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힘을 내고, 다시 출근해”라고 했지만 영주는 이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견고하게 지탱해온 탑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한여름 솜이불을 덮고도 오한에 떨며 열병에 시달리기를 며칠, 급기야 의식을 잃고 헛소리를 하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가 정신이 들었을 땐 끓어오르던 온몸의 열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새기운이 펄펄 솟아나는 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자 한낮의 열기가 후끈거렸다. 

  1. 슬픔을 노래한 악곡이나 가곡
Posted by law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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