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첫 기억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1985년 4월 어느날, 같은 과 선배의 손에 억지로 끌려 따라간 산악회 신입생 환영회장에서였다.
 

불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

하얀 꽃들을 수레에 싣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넓은 들을 찾아갈테야

.....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쓰러져가는 구식 건물을 개조한 학교앞 대포집 '달마', 낡은 계단을 올라가면서부터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낮은 천정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미로처럼 난 통로를 이리저리 한참을 거치면 후미진 2층 다락방이 있다. 노래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온다.

“투투득, 투두득”

양철 지붕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밖에선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노래는 빗소리를 장단 삼아 더욱 우렁차다. 희미한 백열전구 아래 젓가락 장단에 여기저기 수없이 찌그러진 긴 탁자 주위로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앉아 막걸리잔을 돌리고 있다. 담배연기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며 몸에 묻어온 빗물이 증발하면서 나는 열기로 방 안은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한 여학생이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토해내자, 모두들 숨 죽인채 노래를 듣고 있다. 한 발이 줄에 묶여 아무리 날개 짓을 해보아도 사방 한뼘 뿐인 주변에서만 푸드덕거릴 뿐, 그럴 수록 두 눈은 창공을 향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는 독수리처럼, 그녀는 금방이라도 푸른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맹렬한 결의를 담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낮부터 마신 술기운에 이미 불콰해진 나는 선배들이 권하는 막걸리 잔을 요량없이 주는대로 받아마신 덕에 반쯤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노래소리에 따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격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를 떠올릴 때면 그 때 그 장면, 아니 그 때 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던 그 격정이 그대로 밀려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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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w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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