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채규팔···입을 열다

 

다음날 오전 법원에서 채규팔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홍반장은 늦은 오후경 수갑을 채운 채규팔을 검사실로 데려왔다.

“검사님, 이놈이 채규팔입니다, 왜 그 지난번 말씀드렸던 민주란의 손톱에서 나온 혈흔의 주인공 말입니다”

“아, 그래요, 영장이 발부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광석화처럼 빠르시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자, 채규팔씨 이리로 앉으시지요?” 채규팔은 책상앞 간이 의자에 앉았고, 그 옆에 홍반장이 비스듬히 앉았다.

“영장 나오기 전부터 계속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마침 채규팔이 선착장 부근에서 혼자 낚시질을 하고 있길래 영장이 발부되자 마자 잡아왔습니다” 홍반장이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다른 일행들은 없었나 봅니다?”

“네, 나머지 일행들은 마침 별장으로 건너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규팔도 별다른 저항없이 쉽게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조사는 하지 않았을 테고..., 저에게 먼저 데려온 이유라도...”

“일단 검사님이 먼저 물어보실 게 있으실 것 같아서요, 저도 수사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구요” 홍반장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채규팔이 어떤 놈인지, 민주란의 죽음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현재로선 민주란의 죽음과 유일한 연결고리이므로.

채규팔은 20대 초반으로 스포츠 머리에 키는 크지 않았지만 근육질의 단단한 체구였다. 뒤로 수갑이 채워진채 금방 생포된 늑대처럼 눈에 핏발을 세우고 나와 홍반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짧은 순간 내가 채규팔의 눈빛을 맞받자 채규팔은 무언가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곧바로 눈알을 내리깔았다. 체포과정에서 웃옷이 벗겨졌는지, 아니면 더위에 웃옷을 벗고 있었는지 런닝셔츠만 입은 왼쪽 팔뚝엔 밑에서부터 또아리를 틀며 팔을 휘감고 올라온 독사 한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위압감을 주기엔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채규팔 본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왜 잡혀왔는지 알겠어?“ 내가 물었다.

“검사님, 아니, 도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채규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눈빛에선 날카로운 발톱이 숨겨져 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조심해야 한다.

“팔에 뱀 문신이 있잖은가?” 내가 모르는척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니 뱀 문신이 있으면 다 잡아오나요, 민주국가에서 죄없는 시민을, 그것도 백주대낮에 이러실 수 있나요?” 헛점을 보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발톱을 내민다.

“너 울트라파지?” 내가 채규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격을 가했다.

“아닙니다, 문신이 있다고 다 조폭입니까, 이건 철부지 어렸을 적에 장난삼아 새긴 거구요, 물론 돈벌면 지울 겁니다, 지금은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를 봐서 조폭처럼 생겼다고 이러십니까?” 여유를 되찾았는지 농담까지 하고 있다.

“넌 거울도 안보니, 얼굴에 양아치라고 씌여있는걸..., 그리고 누가 너보고 조폭이라고 했냐, 울트라파라고 했지” 홍반장이 받아쳤다. 채규팔은 말실수를 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움찔하면서 잠시 드러냈던 발톱을 얼른 숨기고 있다.

“지난 5월 21일경 어디서 무얼했지?” 내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최규팔의 목에 칼을 들이대 보았다. 최규팔은 이제 자신이 방어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회심의 미소까지 짓고 있다. 그거라면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고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한달도 더 전의 일을 어떻게 기억합니까? 꼭지만 건들지 마시고 무슨 일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시요, 남자끼리 이러시깁니까, 전 무식해서 빙빙 돌리는 건 비위가 상해서 못하거든요” 이젠 방어가 아니라 거만한 자세로 제법 공격적인 어투다.

“그래,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5월 21일 새벽 2시경 네가 사람을 죽였지, 선착장에서 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도로공사 현장 부근 H강 다리위에서”

“생사람 잡지 마십시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으셨습니다” 채규팔은 눈을 치켜뜨며 거품을 물고 있다.

“야, 너 이러다 들이받겠다, 아니면 아니지 왜 눈깔을 부라려” 홍반장이 다시 반격의 한마디를 던졌다.

“저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다니까요, 빨리 풀어주세요, 이건 인권유린이고, 불법체포 아닙니까” 초반에 나타나는 의례적인 오리발이다.

“불법체포가 아니라는 건 영장을 제시했을테니 잘 알 테고....인권?, 좋은 말이지, 인권은 보호할 가치가 있을 때나 존중해주는거야, 짐승보다 못한 놈한텐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지, 안그런가?, 너도 조직생활 해봤으니 알게 아닌가, 조직을 배신하면 어떻게 되지?, 마찬가지야, 국가와 사회를 배반하면 더이상 인권은 없어, 범죄자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진 인권 외에는” 나도 극히 상투적인 훈계를 한다.

“아니 그럼 제가 무슨 죄를 졌는지 정확히 말씀해주시고, 증거를 대십시요”

“말귀를 못 알아들었나, 체포현장에서부터 말했잖아, 살인 혐의라고, 앙탈 부려도 소용없어, 네가 더 잘 알테지, 판사가 아무 이유 없이 체포영장을 발부했겠나, 행동대원 정도 되면 그 정도는 알텐데, 너야말로 지금 우리들 간을 보고 있는거냐?” 홍반장이 화가 난듯 소리를 질렀다. 물론 계산된 행동이다.

“그러니까요, 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죽였는지 말씀해달라니까요?”

“검사님, 이놈들이 타던 차도 현장에서 압수수색했는데 트렁크에 야구방방이, 회칼, 죽도가 한가득이었습니다, 그 틈에 여자 운동화도 있었고, 도구와 차량 여기저기서 루미놀 반응도 나왔구요, 아마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발각되지 않은 여죄가 많을 것 같습니다” 홍반장이 눈을 찡끗해보였다. 아마도 루미놀 반응은 미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의 손톱에서 나온 혈흔이 네 것과 같아, 그리고 사체 가슴에 자창이 있어, 차량에서 루미놀 반응이 나왔다는 건 피칠갑을 했다는 건데, 회칼까지 있고,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나, 네가 칼로 찌르고 강물에 집어던진거야, 변사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네 혈흔이 변사자의 손톱에 남게 된거고, 그리고 네 일행중 한명이 농약을 샀다는 것도 알고 있어, 똑같은 농약 성분이 죽은 사람의 몸에서 나왔거든, 그러니까 차량안에서 변사자에게 독극물을 주입했고, 곧바로 변사자는 차량에서 내려 도망쳤고 너희들은 뒤쫒아가 변사자를 붙잡아 칼로 찌르고 강물에 집어던진거야, 맞지?” 사실 민주란의 사체에서 칼자국은 나오지 않았으니 칼로 찔렀다는 것은 과장되게 넘겨짚어 본 것이긴 하다.


“제 혈액은 체취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같은지 알죠?” 제딴엔 제법 영리한 질문이라고 하는 것 같다.

“3년전 강간치상 사건..., 기억나? 그 때 채취한 네 혈흔의 DNA 결과와 같아”

“하지만 저는 거기에 가지 않았습니다’‘ 단호하게 한마디 했지만 이미 풀이 죽은 목소리다. 3년전 사건에서의 DNA 결과가 보관되어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공사현장에 갔었잖아, 변사자가 물에 빠진 다리는 바로 근처야, CCTV에 다 찍혔어, 네가 묵비권을 행사해도 너는 살인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너 아까 남자 어쩌구 그랬지, 조직을 위해 남자답게 혼자 끌어안고 가던지”

“아닙니다, 정말 저는 아니라구요” 채규팔은 끝까지 버티려 한다.

“이정도면 충분히 구속영장도 청구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시골에 홀어머니가 계시지 않나, 오매불망 아들을 걱정하고 계시는...” 홍반장이 말했다. 언제 시골 홀어미니까지 조사했지. 역시 홍반장은 용의주도하다. 채규팔은 홀어머니 이야기에 사색이 되어 움찔한다. 아킬레스건이군.

“네가 협조만 해주면 최대한 봐줄 수도 있어, 남자로서 약속하지, 여기서 협조란 그저 네가 알고 있는 사실만 말해주면 되는거야, 보복이 두려운가, 원한다면 가명으로 조사받을 수도 있어, 이게 어쩌면 마지막 기회야” 이제 당근을 던졌으니 마지막 수순이다.

채규팔은 고개를 숙인채 묵묵부답이다.

“홍반장님, 더이상 안되겠는데요, 조사하시고 곧바로 영장 올리십시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척 하면서 말했다. 채규팔은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변하고 있다. 마음속에서는 어찌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칼로 사람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혼자만 뒤집어 쓰기엔 억울할 것이다. 조직이 뒤를 봐준다한들 적어도 20년 후에 감방에서 나오면 홀어머니가 살아있으란 보장도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넌 마지막 기회를 놓쳤어” 내가 최후의 펀치를 날린다. 

 

“저, 검사님, 그럼 한가지만 약속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했다고만 하지 말아 주십시요, 조서에도 남기지 마시고”

“좋아, 약속하지, 다만 조서는 작성하지 않을 순 없고, 다른 제보자가 있었다고만 해두지”

채규팔은 체념한듯 숨을 고르며 담담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영주가 차안에서 도망가기에 제가 붙잡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때 민영주가 제 손을 물고 목을 할퀴기는 했지만 저는 민영주한테 주먹질 한번 하지 않았어요,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저는 손이 마비될 정도로 너무 아파서 멀리 쫒아가진 못했어요, 민영주 스스로 강에 뛰어내린 거라던데, 칼은 누가 사용했는지 모르겠구요”

“공사장 공터에 차를 정차했다가 너를 빼고도 2명이 쫒아갔어, 상대는 여자고 너희는 건장한 젊은이야, 그런데 어떻게 강물에 빠질 때까지 붙잡지 못했지?, 너희들이 집어던진거야, 너희들의 공격을 피하다가 발을 헛디딘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형님들 예기로는 민영주가 도망가다가 갑자기 뒤돌아서서는 옥구슬을 꺼내들었다고 합니다, 가까이 오면 강물에 집어던진다고 협박하면서요, 형님들은 이전에도 그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는데 또 책임추궁을 당할까봐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민영주는 계속 뒤로 물러나다가 갑자기 다리 난간을 넘어갔구요, 아마 약기운이 몸에 퍼져서 정신이 혼미해졌던 것 같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도망가다간 정신을 잃고 잡힐 것 같으니까 난간을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형님들이 민영주를 잡으려고 뛰어가는 순간 민영주가 사라졌고, 가까이 가보니 민영주는 한팔로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민영주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민영주는 이미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고, 늘어진 몸뚱어리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민영주는 강물로 떨어졌고요, 한손엔 옥구슬을 꼭 쥐고 있었다고 하구요, 저는 그 때 가까이 있지 않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요, 손이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당연히 형님들이 붙잡아 올 줄 알고 차량 근처에서 망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민영주가 이미 경찰에라도 신고했을지도 모르잖아요”

“죽은 사람이 민영주인 것은 틀림없나?”

“네, 틀림없습니다” 채규팔 일행도 물에 빠진 사람이 민주란인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트렁크의 여자 운동화는 민영주의 것이 틀림없나?"

"네, 맞습니다, 저희가 트렁크에 넣어두고 버린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좋아, 그럼 민영주가 왜 별장에서 탈출하게 된거지, 너희들이 추격한 이유는 무엇이고?”

“처음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별장에서부터요, 민영주는 장회장의 신임을 받아 별장 관리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시에 따라 민영주를 감시했습니다. 장회장이 직접 지시한 건 아니고 장희장의 집사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20년 넘게 장회장 기사로 일하던 사람인데, 봉황그룹의 이사까지 오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장회장의 온갖 비밀을 관리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심복이면서도 장회장한텐 핵폭탄일 수도 있는데 이름이 구장철입니다, 그사람이 저희들에게 명령을 내렸지요, 민영주가 외부에 나갈 때도 항상 따라다녔고, 수상한 행동을 하면 곧바로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아마 민영주도 눈치챘을 겁니다, 그런데 6개월 전쯤 민영주가 별장에서 없어졌습니다, 처음엔 구장철이 저희들이 도와준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별장 건너편 선착장을 거치지 않고서는 빠져나갈 수 없거든요, 그냥 몸만 나갔으면 아무 문제도 안되었을텐데 중요한 물건을 훔쳐갔기 때문에 더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저희 두목이 애들을 풀어서 가볼만한 곳은 모두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휴대폰도 놓아두고 갔구요”

“중요한 물건이란 게 뭐지?”

“아까 말씀드린 옥구슬입니다”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거지?”

“그건 모르겠고, 저희는 그저 값비싼 물건으로만 알았습니다”

“장학모 재력에 그정도 물건이 없어졌다고 기를 쓰고 찾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장회장이 민영주에게 집착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빌미로 다시 곁에 두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민영주가 그 옥구슬을 가지고 어떻게 별장을 빠져나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나?”

“네, 민영주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요, 민영주가 돌아와 말하기로는 상류쪽 마을 어부에게 부탁해서 야밤에 나룻배를 빌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다시 민영주를 찾아낸 거지? 아니 다시 돌아왔다고 했나?”

“그러니까 그게 5월 20일일 겁니다, 민영주가 제발로 찾아왔더라구요, 장학모를 만나겠다구요, 구장철에게 연락했더니 일단 별장으로 데려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모터보트로 민영주를 별장에 데려다주었지요”

“민영주는 다시 돌아올  때 옥구슬을 가지고 있었나?”

“아니요, 몸수색을 했지만 없었어요, 장학모를 만나면 직접 말하겠다고 했구요”

“민영주가 장학모를 만났나?”

“그날 장학모는 외국출장중이었습니다, 다음날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영주는 그날 밤에 도망가다가 변을 당한 것이구요”

“민영주가 사건당일엔 어떻게 도망갔다는 거지?”

“이번엔 제발로 찾아왔고, 장회장을 만나겠다고 했으니 다음날까지야 별일이 있겠나 싶었지요, 다만 혹시 몰라서 민영주의 운동화 밑창에 몰래 위치추적장치를 심어놓았습니다, 이전처럼 나룻배를 타고 나간다고 해도 금방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맨발로 가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도 저희들의 허를 찔렀습니다, 별장 뒤쪽 숲을 통해 빠져나갔던 것입니다, 그 쪽은 몇십년간 사람의 출입이 없어서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고, 길도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숲을 벗어난다 해도 마지막엔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높이가 100여미터는 족히 될겁니다, 때문에 여자가 그쪽으로 도망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남자라도 마찬가지구요, 절벽을 올라가서 조금 내려가면 길이 있기는 합니다만 마찬가지로 그쪽에서 별장으로 오기도 불가능하다고 봐야지요”

 

“신발에 위치추적 장치를 심어놓았다고 하지 않았나?”

“저희는 그날 소주 한잔씩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었다가 제가 목이 말라서 깼는데 위치추적기의 반응장치가 반짝이고 있더라구요, 확인해보니 움직이는 방향이 저희쪽 선착장이 아니라 강건너편 숲쪽으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뭐가 잘못되었다 싶어 별장에 연락해보니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에 별장으로 건너가 보니 집안 전화기를 모두 빼놓았더라구요, 민영주는 사라졌구요, 그래서 숲쪽으로 가보았더니 깜깜한 밤이라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다시 강을 건너와 위치추적기를 확인하면서 차를 몰고 따라갔지요, 민영주는 다시 이쪽 국도로 넘어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지 꽤 빠르게 움직였구요”

“당시 별장에는 누가 있었지?”

“별장에서 청소도 하고 문단속도 하는 노인이 한명 있었습니다만 그 사람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위치추적기를 통해 추적해서 민영주를 붙잡았다는 건가?”

“민영주가 이쪽 국도로 들어서고 나서 한참을 가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다시 느리게 움직이더라구요, 공사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국도를 따라 터벅터벅 걷고 있던 민영주를 발견했습니다, 저희들 차량을 확인하더니 놀란듯 뛰었지만 금방 붙잡았습니다”

“다른 일행이나 차량은 발견하지 못했나?”

“네, 혼자였습니다, 일단 민영주를 차량에 태우고 구장철에게 연락해보았습니다, 형님이 통화하더니 일단 없애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희야 내키지 않았지만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요, 하지만 칼을 사용하기는 영 찜찜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마침 이전에 저희가 준비해놓은 농약이 생각났습니다, 선착장 근처에 심심풀이로 텃밭을 만들었는데 밤마다 들쥐들이 헤집고 다녀서 구입해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사를 놓았구요, 그 때 민영주가 신발을 벗어던지고 달아난 것입니다, 제 손을 물고서요, 형님들도 칼을 사용하진 않은 것으로 아는데 칼자국이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칼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는 거고, 아직 확실하진 않아, 어쨓든 주사기를 준비했다는 건 미리 살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내가 얼버무리며 말끝을 돌렸다.

채규팔은 잠시 침묵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엇다. “아닙니다, 사실은 형님들이 뽕을 할 때 사용하던 주사기가 있었습니다”

“주사를 놓은 사람은 누구지”

“마성각 형입니나”

“그 다음엔 아까 말한대로구?”

“네, 그렇습니다”

“그 후에 여왕벌 주점에 간 적이 있나?”

“아니 어떻게 그거까지, 민영주가 물에 빠진 다음 찾아 보았지만 밤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이 새자마자 강 아래쪽으로 훓어내려가다가 물에 떠있는 사체를 발견했는데..., 저희가 건지려고 보니 벌서 119구급대가 와 있더라구요, 멀리서 보니까 어떤 여자가 민영주의 손을 펴고 무얼 집어가더군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여왕벌 아가씨였습니다, 그래서 찾으러 다녔던 것이구요”

“별장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나?”

“자세한 건 모르겠고, 굉장히 중요한 장부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홍반장님, 채규팔을 조사하시고 일단 채규팔에 대해 구속영장을 올리시지요, 나머지 놈들도 다 잡아들이고, 별장에 압수수색영장도 청구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채규팔 자네는 일단 들어가 있는게 안전할 거야, 물론 자네와 한 약속은 지킬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땅속 깊숙이 잠겨있던 거악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민주란은 그 괴물과 맞서다 희생되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민주란의 원혼을 풀어줄 수 있을까. 나도 괴물의 아가리로 빨려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는지... 왠지 으스스한 한기에 마음도 움츠러들었다.

  

Posted by law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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