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

 나는 애초에 마음에도 없는 학과에 들어왔기에 공부엔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더욱이 법학통론 시간에 20년은 되었을 법한 강의안을 칠판에 깨알같이 적거나 그것이 힘들면 읽어주는대로 받아적게 하는 노교수님 덕분에 더더욱 흥미를 잃고 말았다. 교수님이 전수한 강의안을 달달 외어 시험지에 그대로 적어내야 하는 것을 예견했음에도 나는 노트한번 하지 않았고, 굳이 다른 아이들의 노트도 빌리지 않았다. 대학의 학문 방식은 중고등학교와는 색다를 것으로 알았으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중간고사에서 ‘법과 정의에 대해 논하라’라는 문제가 출제되었고, 교수님 강의안의 유사 정도에 따라 학점이 매겨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른 수업까지도 거의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나는 나름의 생각들을 적어내었으나 D학점을 받았던 것이다. 중고등학교 글짓기 대회에서 ‘아름다운 대한민국’, ‘공산주의와 우리나라’ 등 제목을 정해주고 체제 옹호적이고 그럴듯하게 미화된 글에 상을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서툰 표현일지언정 한 개인의 치열한 사색의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경험과 실험을 통해 형성된 이야기여야 하지 않은가, 그래야만 살아있는 혼과 숨결이 배어나올 수 있지 않은가, 당시 교육 방식은 웅덩이에 갇힌 썩은 물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학기를 마칠 무렵 우리나라 법률체계는 로마법에 기반을 두고 현재까지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또는 벗어나서는 안되는 화석화된 학문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렇게 나의 적성에는 좀체 맞지 않는다고 자기 합리화하고부터는 주인을 잃은 고양이마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것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래저래 법학과는 담을 쌓았고, 선배들이 권하는 사회주의 계열의 철학서나 소설들을 보아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일정한 견해나 주의를 정해두고 모든 현상을 그에 맞추려는, 다시 말해 다분히 작위적이라는 냄새를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념이 넘쳐나 감정의 과잉에 이를 때에는 유치하기까지 하였다. 그 때 내 지적 수준이나 이해의 정도가 그것 밖에 안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나, 나는 괴테의 ‘파우스트’나 헤밍웨이의 ‘내일은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류의 글에 더 끌렸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 더 심취하였다.

같은과 아이들은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도서관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앉아 고시공부에 열중하는 축들도 있었고, 학생운동으로 이미 전력이 붙은 부류도 있었으며, 나같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채 빈둥거리는 패거리들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도서관에서 전공 외의 서적들을 빌려보는 외에 이렇다할 학생의 역할을 맡지 않았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대학생활은 어색하기만 하였다.

 숙희는 혼자 바다여행을 다녀온 후로 예전처럼 모범생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나 하나 알아간다는 건 정말 절묘해, 칠흑의 어둠속에서 한발을 벗어나 빛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야릇한 희열을 느껴, 인생의 참 맛이란 이런 것인가봐” 여름날 짙푸른 가로수 밑을 단둘이 걷고 있을 때 침묵을 깨고 숙희가 던진 말이었다. 나란히 걷다가 무심코 옆을 돌아보자 민소매 티를 입고 있던 숙희의 옆얼굴이 반짝였고, 드러난 하얀 어깨가 보였다. 갑자기 그 어깨가 참 탐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쇼킹한 일이라도 있었어, 거창하게 ‘인생의 참맛’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유레카’라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 것 아니야” 내가 웃으며 짓굳게 물었다.
책을 빌리거나 빌린 책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또는 교양과목으로 택한 불어 숙제를 물어본다는 핑계로 단둘의 만남을 몇 번 가진 다음부터 우리는 격의없이 우스개 소리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무람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구구절절히 대화가 없었을 뿐 반정도는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우리 둘 사이에 서로 오래된 과거 나아가 오래된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할 때마다 마음 속 열기를 들키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우리는 그저 친구일 뿐이다, 친구를 버리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주문을 외우고는 했었다. 나는 숙희를 만날 때면 기다리는 내내 달떠 있었고, 막상 만나서 침묵이 반을 차지하기는 했어도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즐거웠다’, ‘기쁨이 충만하였다’라고 해두자. 그렇다고 우리가 급격하게 연인사이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고, 나도 아직 그럴 용기까지는 내지 못했다. 만나서 헤어지고 나면 한참 동안 아련한 슬픔으로 우울하였으니 그런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던 것일까.
“알아가는 것, 우리네 사람이든, 자연의 비밀이든, 삶의 법칙이든, 인생은 그 과정의 연속이고, 결국엔 다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인가봐, 죽음이 두려운 건 그런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숙희가 내 농담은 무시한채 진지하게 말했다.
“야, 너 요즘 무슨 도라도 닦니, 어려운 이야기만 하는구나, 당장 우리 둘 사이에서도 서로 모르는게 많은데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야” 겸연쩍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내가 말했다.
“그런가?, 미안해,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만 해서” 숙희는 아래쪽에 눈길을 두고 있었다.
“아니, 미안할 건 없고, 안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말하면 깨달음일테고,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면 성인의 범주에 들어가겠지, 성인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지만 우리가 능력이 안되어 그것을 이해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범인인 우리들로서는 네가 말한대로 칠흑의 어둠을 조금씩 벗어나다가 마지막까지 어둠을 옆에 두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겠지, 또 나머지 칠흑의 영역은 후세에 물려주는 것일테지,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런 거 아닌가” 나는 미안해하는 숙희를 위해 동조하듯 한마디 했다.
“나 요즘 야학활동 하고 있어” 숙희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야학, 애들 가르치는 것,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응, ‘녹색 학교’라는 곳이야, 처음에는 아는 선배가 급한 일이 있어서 대신 몇 번 나갔는데 정식 선생이 되어 버렸지 뭐야, 나도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어, 돈을 받는 건 아니지만 싸구려 지식을 파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고 그래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내 만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 말이야, 그런데 막상 닥쳐 보니까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이 의외로 많아, 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경제적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애들, 우리는 적어도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정도로 궁핍하지는 않았잖아, 아마도 이 괴물 같은 도시가 그런 애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 같아, 도시는 서로를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아무도 돌아보아 주지 않잖아,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거지, 우리 마을 같은 공동체 사회라면 그렇지 않을텐데 말이야, 제 때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가장 아쉬워 하는 것은 그냥 알고 싶다는 거야, 하다못해 외국어로 씌어 있는 간판이 무슨 뜻인지, 신문에 난 기사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하는 거지, 그러려면 지식이 필요했던 거고, 깜깜한 세상에서 벗어나고픈 거지, 단순히 삶이 고달퍼서나 친구들의 학력이 부러워서 배우는 건 아니야, 부자집 애들 과외도 해보았지만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지루해하는 애들과 비교해보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둘을 반쯤 섞어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게 너의 유레카냐?”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야, 그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 졸음을 참아가며 나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져, 내가 어줍잖게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들은 그럴 여유도 없이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런 자신들을 스스로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눈물겹지 않니, 야학에 나간 건 정말 잘한 것 같아, 나는 그네들이 조금씩 빛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만 처음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살고 있다는 보람을 느껴”
“그래, 네가 보람을 느낀다니 좋구나, 기왕 시작한 거니까 열심히 해봐, 그런데 무슨 과목을 가르쳐?”
“영어도 가르치고, 수학도 가르치고 ..., 나보다 나이많은 언니, 오빠들도 많아, 그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를 땐 몸둘바를 모르겠어, 너도 해볼래”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빈둥거리고 있는데” 나는 숙희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당장 해보고 싶었지만 나 스스로를 추스르지도 못하고 있던 터라 숙희의 제안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가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그 때 유행하던 영화나 노래들, 주변 친구들, 교수님들, 학교생활 등등 소소한 일상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신비로운 향연이나 성찬에 초대된 귀한 손님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비밀스런 만남 외에도 작은 향우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나거나 바람이나 쐬자며 산행을 제안했고, 숙희는 대부분 거절하지 않고 곧잘 따라나서고는 했다.
어느날 관악산 하산길에 “너는 꿈이 뭐니”라고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꿈, 초등학생도 아니고, 꿈은 무슨?”
“나는 아직 어린가봐, 남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제일 궁금해, 그 사람이 어떤 꿈을 꾸느냐를 알면 그 사람을 제일 잘 알 수도 있을 것도 같아, 꿈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향후 계획이라고 해도 되고”
“그러면 나를 알고 싶다는 뜻?, 글쎄, 나는 떠나고 싶어, 기회가 되면 이 땅을 떠나고 싶어” 숙희의 의외의 대답은 나를 떠나고 싶다는 말로 들려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민이라도 가겠다는 거야?” 내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건 아니고, 얼마가 됐든 아무데로나 떠나 넓은 세상을 마음껏 보고 싶어”
“책상물림인줄만 알았더니 대단한데, 그런 생각을 다하고, 불어를 전공했으니 파리쯤으로 가면 어떨까, 파리지엔느가 되어 보는 거지, 파리의 공기는 자유를 주리라, 멋지군” 나는 또다시 숙희의 부재가 찾아올 것같만 같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혼자 떠들어댔다.
“그냥 막연한 생각일 뿐이야,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고...”
“그럼 떠날 때 꼭 말해야되, 네가 허락만 해주면 나도 같이 가고 싶어, 할 일도 없는데 네 뒷바라지나 해주면서 돌쇠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때는 정말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야, 너는 이 땅에서 해야할 일이 많이 있을꺼야, 너까지 가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키니?” 숙희도 웃으면서 받아넘겼다.
“그럴까, 나는 이 나라를 지키고 있을께, 언제든 다녀와”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끝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입을 다물었다.

숙희와의 미묘한 감정적 교류를 하는 한편으로 민주란과의 산행은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여름이 지날 무렵엔 인수봉 취나드길, 비둘기길, 크로니길, 의대길, 빌라길, 동양길, 선인봉 박쥐길, 표범길 등 북한산, 도봉산 암벽에서 그 때까지 개척된 대부분의 길을 오르를 수 있었고, 때로는 중급 정도에서 선등을 서보기도 했다. 설악산에서 며칠씩 야영 하면서 바위길을 다니기도 했고, 새로운 루트를 찾아 시험 산행을 하기도 했다. 인철은 다음해에 있을 히말라야 합동 등반팀에 뽑히기 위해 맹훈련중이었다. 대학 산악회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재야 산악회에서 차세대 유망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산악인으로 살아가기로 확고한 진로를 정한 것 같았다. 석주는 명당자리를 찾는데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등반 모임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감히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어서 방학 때도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공사판 질통을 짊어지고 번 돈중 학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등반장비를 구입하거나 술을 마시는데 할애하였다.

등반할 때에는 통상 3-4명이 한팀을 이루었고, 나는 거의 대부분 민주란이 리더인 팀에 끼이고는 했다. 어느덧 그녀의 숨소리만 들어도 몸상태가 어떠한지, 그녀가 먼저 올라간 코스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팀웍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 자일을 걸때는 팽팽한 줄에서 그녀의 허리, 허벅지의 살집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서로 몸을 포개거나 끌어안지 않아도 그녀의 육체를 어루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힘겹게 확보장소까지 올라와 손이 스칠 때면 전기가 통하듯 야릇한 전율이 전신을 관통하고는 했다. 숙희에게서는 느끼지 못하던 무언가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녀와 나는 든든한 자일파트너로서 서로의 목숨을 주저없이 맡기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민주란은 남자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산악회 선배들은 대부분 한번 사귀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 산악회장인 장태산이나 고향 선배인 충모도 내심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활달한 성격이나 세심한 배려같은 그녀의 행동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고, 또래의 남자들은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오인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같은 산악회에서 남녀가 사귀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었다. 신성한 산에서 불경스럽게 연애감정이 흐르면 엄격한 규율이 흐트러져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때로는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로 인해 산악회 자체가 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문율이 있다 한들 청춘남녀가 모인 곳에서 수도승이 아닌 다음에야 불타는 감정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짐작컨대 은밀한 사랑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날 야영지에서 모두가 잠자리에 든 다음 불꺼진 버너를 사이에 두고 둘만이 남게 된 적이 있었다.
“너 애인 있니, 지난번 숙희란 애는 네 애인이니?” 민주란이 무심코 내게 물었다. 언젠가 산행 때 숙희를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민주란과 숙희가 통성명을 나눈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요, 그냥 고향 친구예요”
“아니야, 여자의 직감으로 보건데 특별한 사이 같던데”
“아이 참, 아니래두요, 숙희는 한동네에 살았고, 서울에서 다른 고향 친구들과 함께 만나고는 해요”
“좋은 아이 같던데, 잘 해봐” 민주란은 그러면서 남은 술잔을 비우더니 자신의 개인사를 조금 들려주었다.
민주란은 좀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터였다. 생각해보니 나도 물어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들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주로 산이나 등반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었을 것이다. 불쑥불쑥 민주란의 얼굴에 스치는 그늘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나는 그 비밀을 풀고 싶었지만 그녀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감히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너는 부모님이 어떤 존재이니” 민주란이 물었다.
“어떤 존재라니요, 그저 고마우신 분들이죠” 나는 민주란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무슨 뜻인지 파악하지 못하여 그렇게 막연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고등학교 음악 선생이셨어, 고등학생 제자와 사랑에 빠졌고, 아마도 은밀한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던가봐, 그쪽 부모님이 알게 되었고, 어머니도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셨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아버지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시고야 말았어, 동남아 어딘가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떠나신 거야, 아버지는 그 때 어떤 생각이셨을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낭만주의자였을까, 하지만 남겨진 가족에겐 고통 뿐이었어, 추한 스캔들일 뿐이지, 우리는 사는 거야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주변의 손가락질은 견딜 수 없었어, 아버지 일인데 왜 우리가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결국 살던 동네에서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나를 키우기 위해 시장바닥에서 날품팔이도 마다하지 않으셨어,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러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지, 어머니가 마지막 남긴 말이 뭔지 알어?, ‘주란아, 아버지를 용서해라, 미워하지 마라, 너도 언젠가 이해할 날이 있을 것이다’였어” 민주란은 남의 말하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다가 소주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나는 숨죽인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 어머니가 더 미워, 차라리 아버지를 저주라도 했으면 후련했을텐데, 어머니는 내심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 순간의 일탈 쯤으로 생각했던 거지, 그깟 남자 하나 때문에 끝까지 궁상을 떨고 비참하게 살았다는 것이 너무 가여워, 나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미칠 것만 같아, 깨끗이 잊고 재가라도 해서 편하게 사셨으면 오히려 덜 억울했을텐데....”

민주란은 작정한 듯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외삼촌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들어와 혼자 나와 살고 있으며, 악착같이 돈을 벌어 꼭 성공할 것이고,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일 것이라고. 그리고 주란은 아버지가 난초를 좋아하였는데 그 자주빛 꽃이 너무 좋아 지어준 이름이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에 다닌 몇몇 추억들, 그 때가 가장 행복했었노라고 하는 등등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다가 민주란은 앉은채로 고개를 숙인채 잠이 들었고, 내가 그녀를 깨우려고 다가갔을 땐 눈가엔 눈물을 삼킨 자국이 뚜렸했다. 민주란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빛이 흐드러지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깨우기를 단념하고 나의 외투를 그녀의 외로운 등에 걸쳐주고는 깊숙한 나무 밑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시간은 하염없이 계속 흘러갔다. 나는 고민 끝에 무작정 자퇴를 하려고 하였다. 학업을 등한시하면서 더 이상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만 같아서였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충모 선배는 일단 휴학하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라고 충고하였고, 나는 그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군입대를 위해 2학년 1학기를 채우지 못한채 휴학하였다.

동규도 군복무를 위해 고향에 내려가 방위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옆방 술집 처녀와 놈팽이 청년은 청년이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사기도박임을 알고 흥분한 나머지 칼로 사람을 찔러 청송 교도소로 갔고, 처녀는 옥바라지를 하러 그 근처로 떠났다. 옆방 버스기사 아저씨는 안내양과 방사를 치루다가 부인한테 들켜 회사까지 찾아온 마누라와 한바탕 푸닥거리를 했고, 버스기사를 그만두고 트럭을 구해 아내와 함께 배추장사를 하러 다녔다. 집에 혼자 있던 아이도 함께 달고서.

나는 휴학을 하고서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고, 방세라도 아끼기 위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북한산 후미진 곳에 텐트를 치고 지냈다. 등산객들이 먹다 남은 쌀과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낮에는 온산을 미친듯 뛰어다니다 밤이 되어 지칠대로 지치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월간을 입영 전날까지 산에서 지냈다. 민주란에게만은 “당분간 산에서 지낼 것이다, 등반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 곧 연락하겠다”고 하였었다.

배꽃이 산 밑자락을 하얗게 뒤덮을 무렵 민주란이 찾아왔다.
나는 깜짝 놀라 “제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었다.
“네가 갈 곳이 뻔하지 않니, 이산 저산 우리가 갔던 곳들은 모두 찾아보았지, 여기가 10번째로 방문한 곳이야, 저 위에서 보니까 텐트 한 채가 보이길래 혹시나 하고 와봤지,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니, 연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니,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가는 군대, 너무 티내는거 아니야” 민주란이 힐난하듯 말했다.
“아, 제가 선배님한테 불만이 있을 리가 있겠어요,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군대 가기 전에 산의 정기나 마음껏 받으려고요, 생각할 것도 좀 있고, 시내에 있어 봐야 할 일도 없고요”
“그래, 안색은 썩 좋아 보이지 않은데,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니” 민주란이 걱정어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여기 등산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아요, 산에서는 인심도 후하고, 잘 얻어먹고 있습니다” 내가 씩씩하게 말했다.
“그래, 날씨가 너무 좋다, 이러지 말고 우리 등반이나 하자” 그녀가 선등을 서서 인수봉 우정길을 올랐다. 오후에 시작한 등반이라 하강할 때쯤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 길이 그녀와의 마지막 등반이 될 줄이야.
텐트로 돌아와 함께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단둘이 산에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숙희라는 애가 널 찾더라, 나한테 편지가 왔어, 무슨 일 있냐고” 민주란이 말했다.
“그래요” 내가 건조하게 대답했다. 나는 숙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쯤해서 내가 조용히 떠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었다. 감정적으로 더 나아가면 상처를 입을 것 같았고, 그러면 그것으로 끝장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었지, 산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입대는 언제냐” 민주란이 물었다.
“내일요”
“뭐, 내일, 넌 아무 연락도 없이 떠나려고 했던 거니, 너무한다, 예의가 없어도 이만저만해야지, 내가 그렇게 가르치진 않았을텐데, 적어도 사부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니, 내가 한발만 늦었어도 못보고 갈 뻔 했구나”
“죄송해요, 흥청망청 떠들썩하게 입대 환송식을 하는 것도 싫고, 전쟁나가는 것도 아니고, 영영 가는 것도 아니구요, 또 휴가나오면 볼텐데요, 뭐”
“내일 일을 어떻게 알어, 어느 구름이 비가 될지 어떻게 아느냐구, 지금 이순간이 제일 중요한 거야, 다음은 없어” 민주란이 의미심장하게 내 잘못을 질책했다.
뜻하지 않게 민주란과 단둘이 환송식을 하게 되었다. 민주란이 준비해온 통조림 안주에 소주 2병을 모두 비웠다.
“내려가실 수 있겠어요, 제가 아래까지 모셔다 드릴까요”라고 물었을 땐 술이 약한 민주란은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취했나봐, 조금만 쉬다 갈께, 너도 마지막 밤인데 조금 있다 같이 철수하자, 내가 방이라도 잡아줄께” 민주란이 말했다.

나는 주란에게 내 텐트를 내주었고,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민주란이 술이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멀리 서울의 야경을 보노라니 문득 서글픔이 복받쳤다. 저 도시의 불빛 어디에도 나의 흔적은 없는 것이다. 내 젊음의 한 단락이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란이 혼자 자고 있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Posted by law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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